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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6일 일요일

공정무역의 선구자, 마이클 배럿 브라운을 기억하며 (2016.11.14)

 2015년에는 유난히 많은 거인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공정무역 운동에는 ‘시장 안에서 시장에 저항하라(In and against the market)’는 유명한 슬로건으로 알려진 마이클 배럿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있다.

2015년 5월 7일, 신좌파 운동에 투신한 사회주의자이자 경제학자이며 노동자 교육에 헌신한 교육자, 공정무역 운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마이클 배럿 브라운이 활동가로서의 삶을 마쳤다. 향년 97세 (1918-2015)
좌파 경제학자로서 New Left Review (1960) 창간, 버트란드 러셀이 주도한 Peace Foundation 설립 및 재단 기관지 Spokesman의 창간(1963), 노동자 자주관리 연구소 (Institute for workers’ control) 설립(1968) 및 사회주의 경제학자 컨퍼런스의 출범(1970) 등 영국 진보 운동의 주요 사건들에 주도적인 역할로 참여하며 작지 않은 발자국을 남겼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에드워드 톰슨과 같은 다른 신좌파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마이클은 구소련이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무력 진압하는 것을 보고 공산당을 탈당한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존 공산주의의 정치, 경제에 실망한 이들은 문화, 정치, 경제 영역에서 각각 ‘꾸준한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의 일환으로 기존의 노동과 계급문제에만 천착했던 기존의 좌파들과 달리 시민권 운동, 성소수자 권리, 젠더 문제 등 광범위한 사회정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이클은 ‘꾸준한 경제 혁명’의 일환으로서 노동자의 교육, 정치 세력화, 노동자 자주관리 제도를 신좌파의 중요 의제로 보았다.
그의 인생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노동자 교육이었다. 그는 30세이던 1948년부터 에섹스, 쉐필드 등지에서 광산 및 철강 노동자들을 가르쳤고 이들을 노조 활동가, 지방 및 중앙 정치인들로 육성했다. 사우스 요크셔의 웬트워스 캐슬이라는 지역에 노던 칼리지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을 맡았으며, 이 학교는 오늘날에도 연간 6천명이 수학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평생 교육기관으로 설립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다.
1983년 은퇴 후, 노동당의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이 이끄는 런던 광역시 의회 (Greater London Council)의 지원으로 전 세계 커피 생산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 조직인 ‘제 3세계 정보 네트워크-약칭 트윈’ (Third World Information Network; TWIN- 후에 비영리 법인이 됨)을 설립하였으며, 이 조직을 기반으로 영국 공정무역 운동의 선구적 무역회사인 트윈 트레이딩 (TWIN Trading)를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마이클이 트윈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트윈(비영리단체)은 영리, 비영리 단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커피 무역 전문회사인 트윈 트레이딩에 이어 공정무역 초콜릿 전문 기업인 디바인, 커피 전문 기업 카페다이렉트를 설립하여 공정무역 운동의 확산의 기틀을 다졌다. 트윈 트레이딩은 비영리 단체 트윈의 회원인30개의 협동조합 네트워크와 거래를 하고 있으며, 이들 중 다수가 트윈 트레이딩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디바인의 최대주주도 생산자 협동조합인 쿠아파코쿠이다. 이처럼 생산자가 판매회사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노동자 소유 기업 개념의 국제적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신좌파 운동, 노동자 교육, 공정무역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는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없는 분야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 가지 활동 분야는 모두 경제학자로서 그가 주장한 현실 이해에 바탕을 둔 것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이클이 공산당을 떠나 신좌파 운동에 가담한 것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적 공산주의가 아닌 분권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경제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교육, 정치 세력화, 노동자 소유나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에 대한 신념 또한 경제 내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정무역은 이런 생각을 국제 경제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에서 강화되어 가는 대기업들의 경제권력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유력한 수단 역시 민주주의라고 보았다.
나는 그의 생각을 요즘 언어로 표현한다면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 민주화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김종인 대표의 영향으로 기업에 대한 독일식 공공 통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로버트 달의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듯 자원과 부의 집중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퇴보에 대항하여 경제 시스템 내에서 민주적인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한다는 보다 넓은 개념을 경제민주화로 보는 것이 보다 총체적인 이해가 아닐까 한다.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재벌 규제와 같은 국가 정책적인 차원의 실행, 노동자 소유 및 노동자 자주 운영, 기타 이해 당사자의 참여 등 기업 의 이해 당사자들이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수준의 변화, 공급 사슬의 자원 집중 문제에 대한 대응 운동으로서 농업 협동조합이나 소비자 협동조합 등의 결성 등과 같은 활동들이 있을 수 있으며, 이런 움직임 모두를 경제 민주화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마이클이 노동자 교육에 헌신한 것은 노동자가 깨어나 조직화하여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경제 권력의 집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고, 공정무역에 헌신한 것은 조직화된 농민이 권력화된 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공급사슬의 경제 민주화가 개발도상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디바인 초콜릿의 소유권을 농민 협동조합이 가질 수 있도록 한 것도 그의 이런 신념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신좌파 운동 참여, 노동자 교육, 공정무역의 세 가지 사회활동 모두 경제학자로서 마이클 배럿 브라운이 보여준 앎과 실천의 일치라고 볼 수 있다.
처음 한국에 공정무역이 들어올 때, 공정무역 단체들조차도 흔히 ‘착한 소비’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착한 소비’는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공정무역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는 단어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다. 공정무역 소비자로서 공정무역의 구매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에 투표하는 행위이며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에서, 점점 커져가고 있는 불평등, 경제 권력의 집중은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근본부터 위협하고 있다. 소유와 권력의 집중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삶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미래에 투자할 것인가? 마이클 배럿 브라운의 학문과 삶에 대해 주목해 보는 것은 한국 내 공정무역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마이클 배럿 브라운의 업적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바이다.

2016년 1월 10일 일요일

커피 시장의 주인은 누구인가?

커피 시장의 주인은 누구인가?
커피 한 잔에 담긴 불평등과 저항

커피가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물품이 아니었다니

‘여러분 전 세계에서 거래금액 기준으로 교역량이 가장 많은 상품이 뭔지 아시나요? 예, 짐작하시는 대로 석유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는 뭔지 아시나요?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커피입니다.’

이런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강연을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을 들은 적이 있다. 순 거짓말이다.  

커피 전문 칼럼니스트 마크 펜더그라스트의 “Uncommon Ground”의 2010년 개정판이 2014년 한국에서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서문을 읽다 보면 커피가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물품이라는 통념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마크 펜더그라스트 또한, 너무나 당연한 듯이 회자되어 온 이야기여서, 사실 확인을 해 볼 생각을 해 보지 못하고 강연 마다 같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강연에서 경제학자인 한 청중이 의문을 제기하자 한 번도 확인해 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확인 결과 정말 오랫동안 사람들이 진실인양 믿어왔던 이야기가 사실과 다름이 밝혀졌고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1] 정말로 UN의 전 세계 커머디티 교역 관련 통계 정보가 있는 UNCOMTRADE.ORG 에 접속해 보면 누구나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확인해 보니 커피는 구리, 밀, 설탕보다 교역량이 작다. [2] 같은 농산물과 비교해 보더라도, 밀, 설탕, 콩에 이어 4위에 지나지 않는다. [3] 과거에 교역량이 석유 다음이었던 적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언론에 보도되는 얘기도 하도 사실 확인 없이 유포되는 얘기가 많아 별로 놀라운 얘기는 아닌데, 저자는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책에 잘못된 정보가 활자화 되어 널리 배포된 것이 적지 않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잘못된 통설에도 배경과 기원은 있을 터. 사람들은 왜 애초에 커피에 대해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다” 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커피 생산자의 꿈과 절망

사실 커피는 “개발도상국이 수출하는 물품 중에서”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품목이다.[4] “커피가 전 세계 교역량 2위”라는 잘못된 정보를 누가 유포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정보를 인용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수출 품목 중에서”라는 전제를 누락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해 본다. 밀, 설탕, 콩 등은 전세계 교역량을 따지면 커피보다 크지만, 선진국에서 생산하는 양이 적지 않은 반면, 커피는 열대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작물이며 상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춘 선진국이 거의 없기[5]에 개발도상국의 수출품 중에서는,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큰 것이 맞다.

개발도상국이 수출할 수 있는 품목 중 2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커피가 저소득 국가들에게 특히 중요한 상품이라는 뜻이다. 과거 커피가 식민지에서 커피 플랜테이션을 운영했던 식민 국가들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커피 생산국들은 커피 수출에서 생긴 부가가치를 잘 활용하면 경제발전에 필요한 기초자본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들이 독립하던 5-60년대부터 커피 협정의 붕괴로 커피 위기의 시발점이 된 1989년까지의 짧은 기간은, 커피 생산국가들이 여전히 이런 희망을 품고 있던 시기였다.

1989년 시장 안정을 위한 안전 장치 역할을 하던 국가간 협정이 폐지되고 1980년대 지속된 세계은행과 IMF가 강제한 구조조정 계획에 의해 커피 생산국의 관련 정책 기구들이 무력화되는 급격한 시장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커피 생산국을 위한 짧았던 풍요와 기회의 시간은 지나가고 시련의 시간이 닥쳐왔다. 베트남의 시장진입과 커피 쿼터의 폐지로 인한 공급 과잉사태가 가격 폭락으로 이어진 후 장기간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커피 시장에 국지적 공황이 찾아온 것이다.

커피 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2002년 발간된 옥스팜 보고서 “Mugged” 에서는 생산자들이 받는 커피 가격이 지속적으로 폭락하여 기대했던 수익은커녕 빚더미에 앉게 된 커피 농민들의 고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50년 이상 커피 농사를 지어온 농민은 ‘이렇게 낮은 가격은 평생 처음’이라며 하소연한다. 이 때 국제 커피 가격은 최근 100년간 최저가격으로 떨어졌다. 브룬디(79%), 이디오피아(54%), 우간다(43%)는 전체 수출에서 커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의 전체 경제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이 나라들이 받은 충격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이 경험한 대공황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남미의 커피 생산국들 또한 대부분 커피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커피 가격의 장기 불황이 경제 전체에 미친 파급효과는 한 나라 경제의 기반을 흔들 만큼 강력했다. 특히 커피는 이 나라들에서도 가장 가진 것 없는 고지대의 가난한 사람들, 원주민들이 생계를 의존하는 작물이었고,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한 이들은 더 심한 타격을 받았다. 아프리카, 남미의 많은 커피 생산지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었고, 커피 농민들은 코카와 같은 마약의 원료를 재배하거나, 고향을 등지고 목숨을 건 이주를 떠났다. 커피 가격이 가장 낮았을 때에는 커피 농민이 받는 가격을 가정에서 마시는 즉석 커피 26.4$ 1kg 한 봉지에 들어간 우간다 로부스타 생두의 양으로 계산하면 0.14$, 약 0.5%에 불과했다. [6]

커피 산업 전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개입 노력과 더불어 중국 등 신규 시장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에 힘입어 국제 시장 가격은 회복되었고 10년 이상 농민들의 삶을 파탄에 빠뜨렸던 커피 시장의 장기 불황은 지나갔으나, 여전히 커피 시장은 구조적으로 변동성이 큰 시장이며, 여전히 커피 농민들은 커피 산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시장자유화 조치에 따라 각 생산국의 국영, 준국영 커피 관련 기구들이 폐지되고 난 빈 공간을 대형 커피 업체들이 재빠르게 장악했고, 이들은 인수, 합병을 통해 커피 시장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시장자유화 조치는 커피 위기를 야기 했을 뿐 아니라 커피 시장의 판도를 영원히 바꾸어 버린 것이다.

누가 커피 시장을 지배하는가?

오늘날 커피생태계에는 약 2,500만 명의 생산자가 있고 5억 명의 소비자가 있다. 5개 업체(네슬레, 크래프트-멘델레스, 사라 리 Sara Lee, 프록터앤드갬블 Procter & Gamble, 치보 Tchibo)가 전체 커피 로스팅의 45%를 장악하고 있고, 겨우 3개 업체(노이만 그룹 Neumann Gruppe , ECOM, 볼카페 Volcafé)가 생두 거래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7] 바로 이들이 오늘날 커피 생태계의 권력자들이다.

현재의 커피 시장은 권력과 자원의 집중이 점점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커피 시장의 과점 세력이 된 거대 로스팅 업체와 무역상사들은 커피 시장에 진입하는 관문을 장악한 문고리 권력이 되어 협상력이 약한 다수의 중소 농장과 생산자들을 한국의 대기업이 하청업체 관리하듯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막강한 영향력의 독점 대기업이 피라미드 형태의 네트워크 안에서 하위 구성원에 대해 직접 책임은 지지 않지만 거래상의 우위, 즉 갑을 관계를 이용,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불평등한 관계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글로벌 가치사슬 이론에서는 ‘관계형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8]

이미 가진 구매자 권력을 행사하여 구매자 권력이 더 커지는 현상, 그로 인해 시장 지배적 대기업들에 시장 권력과 자원의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현상, 대기업과 투자회사들의 투기로 인한 변동성 확대, 생산자 보호 역할을 수행하던 각 생산국의 국가 기구를 시장 개입이라는 명목으로 해체된 후 농업 생산자들이 파편화되고 협상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 커피 산업에 닥친 이런 일련의 변화는 단지 농민들의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된 힘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고 커피 농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소규모 생산자들을 조직화하고 독점적 구매 권력을 규제하여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시장의 균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다.

1952년 이미 캐네스 갤브레이스는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미국 내 농식품 기업의 성장과 권력 및 자원의 집중현상을 조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점을 규제하고 농민들을 조직화하여 권력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정무역이 소농들의 조직화를 강조하고, 생산자 조직의 모니터링에 공을 들이는 것 또한 근본적으로는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갤브레이스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것은 미국 농산업의 문제였으나, 시장 권력의 집중 현상이 전 지구적 현상이 된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 주장은 더욱 더 설득력을 가진다.

커피는 고지대나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카카오, 설탕, 차 등 다른 열대 작물 대비 소규모 생산자 조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콜롬비아 전국 커피 협동조합 연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산자 조직들이 촘촘하게 조직되고 이들이 다시 광범위한 연대체를 구성할 경우, 생산과 품질이 안정되고 협상력이 높아져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커피 시장에 공정무역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칠레 도심의 빈민가에서 빈민 사목을 하다가 피노체트 정권 때 추방당한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신부이다. 멕시코로 옮겨 주로 원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테후안테펙 마을에서 노동사제로서 농사를 지어 번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목을 하던 프란스 신부는 원주민 마을 사람들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여 공정무역 거래를 시작했다. 1981년 처음 원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 조직을 위한 워크샵을 시작한 이래, 성난 중간상들에게 테러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시리 UCIRI 협동조합은 네덜란드의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공정무역 인증을 만들고, 인증제를 바탕으로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거래를 개시하고, 수매량을 늘리고, 수출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등 필요한 일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합류했다. 조합원 수가 많아지자 협상력이 커졌을 뿐 아니라 품질 관리, 농사 기술 공유, 상호 부조 등 조합의 장점이 발휘되어 점차 다른 언어를 쓰는 부족 공동체들도 조합에 가입하는 등 점차 지역 전체의 커피 농민들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UCIRI가 협동조합으로서 정착하기까지, 37명의 회원이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망했으며, 사람들은 기존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중간상인들과 연관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9] 생산자들의 조직화에 대해 조합 파괴 행위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로 생산자들의 조직화에 대응하는 사례들은 남미 지역에서 흔하게 보고되고 있다.[10]

생산자들이 조직화 해서 “작은 대장” 중간상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조직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끝판 대장”들이 장악하고 있는 커피 시장은 생산자 조직에게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커피 및 유통 대기업들이 납품업체들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은 생산자 조직의 회원들을 보호해 가면서 만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며, 대기업들을 우회해서는 선진국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정무역이 필요한 것이다. 생산자들의 조직화만으로는 시장 진입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광범위한 소비자들의 조직화를 통해 생산자 조직의 물품에 시장을 제공하고 구매자로서 대기업에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업 및 커피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외부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공정무역 인증 “막스 하벨라르”도 사라 리와 같은 커피 대기업의 압력으로 출시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비영리 단체인 솔리다리다드와 이에 호응한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공정무역 기업/단체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해당 단체가 거래하는 품목을 많이 판매하여 지속 가능한 이익을 내며 생산자들과의 공정한 거래를 이어가는 것이지만, 공정무역 단체가 지향하는 이상이 보다 공정한,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라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화뿐만 아니라 경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 변화에도 활동의 우선 순위를 두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의 작은 일부분으로 자선단체 규모의 소중하지만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며 살아 남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공정무역 단체들의 현실이지만, 공정무역의 비전은 사람들의 살림살이, 즉 경제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공정무역을 가난한 사람을 돕는 ‘착한 커피’와 같은 알기 쉽고 거부감 없는 이미지로만 포장하던 관행에서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를 비롯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품을 둘러싼 경제 권력의 문제점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불의와 불평등에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가난한 자도 약자도 함께 살 수 있는 살림살이, 공생의 경제로의 전환을 이상으로 삼고 현상 진단에 바탕을 둔 구체적이고 뚜렷한 정책목표를 가진 캠페인 및 정책 옹호 활동의 결합이 필요하다.

작년 이맘때 발간된 국제 공정무역 어드보커시 사무국의 “누가 시장을 지배하는가? Who’s got the power?” 는 공정무역 캠페인 활동이 나갈 방향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생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집에서는 불평등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고 있는 불평등의 심화, 그에 얽힌 불공정 행위들에 대한 이론적 배경 검토에서부터 시작하여 EU 및 각 나라와 여러 주체들에게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그 동안 간과되었던 구매 독점(monopsony)에 대한 규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판매자 독점이 소비자의 권익을 해친다는 인식에서 판매자 독점의 규제를 위한 법 체계는 각 나라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슈퍼마켓과 같은 새로운 구매 독점(monopsony)의 경우 소비자 구매가격의 인하, 즉 소비자에게 이로운 측면이 있다는 생각에 독점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슈퍼마켓과 같은 구매 권력의 독과점이 생산자 측, 즉 농민, 노동자측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게 되면 결국에는 소비자 복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11] 

따라서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는 판매자 권력뿐 아니라 월마트, 테스코와 같은 슈퍼마켓들의 구매자 권력의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하고, 규모가 커진 이들 슈퍼마켓에는 특히 구매 원가의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이들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공급사슬에서 불공정 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들 대기업들을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완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공정무역 단체들은 그 동안 생산자의 조직화를 위한 현지 활동이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에만 집중해 왔다. 국제기구나 정부 정책을 향한 목소리는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공정무역 사무국의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Who’s got the power?’ 자료집은 공정무역, 불공정 행위에 관심이 있는 한국의 시민 단체들에게 활동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서라 할 수 있다. 시장의 불공정성과 지속 불가능성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장 권력 집중 현상의 역사적 배경과 흐름, 커피, 설탕, 코코아, 면화 등 열대 작물 시장의 불공정 거래 행위들의 양상,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 정부의 노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관심 있는 단체와 독자에게 적극 권하는 바이다.

자료집 영어 원문은 다음 인터넷 주소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1] 마크 펜더그라스트 저, 정미나 역, (2013)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을유문화사, 서울, 2판 서문
[2] 2012년 수출 기준으로 집계한 전세계 연간 교역량은 석유 15,623억$, 구리 519억$, 밀 487억$, 설탕 445억$, 커피 392억$, http://comtrade.un.org/pb/CommodityPagesNew.aspx?y=2012
[3] Pendegrast (2009) Coffee second only to oil? Is coffee really the second largest commodity? Mark Pendergrast investigates and finds some startling results, Tea and Coffee Trade Journal, April, 2009
[4] Talbot (2004) Grounds for Agreement: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Coffee Commodity Chain, 윗글에서 재인용
[5] 선진국에서 생산하는 커피는 하와이 코나 커피가 거의 유일하다.
[8] 같은 문서, p23
[9] Jan Van der Kaaij (2002) Building a sustainable, profitable business: Fair Trade Coffee, IMD International Teaching Case
[10] FTAO(2014) 앞 문서, p36, 농민 인터뷰에서 (무기명)
[11] 같은 문서. FTAO (2014) 의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공정무역으로 할 수 있는 멋진 일들 (2012년10월)

공정무역으로 할 수 있는 멋진 일들
김진환 아름다운가게 공정무역사업처장
1.     들어가는 글

공정무역이 한국에 도입된 지도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공정무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실마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2002년 아름다운가게의 설립이라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2002년, 아름다운가게는 설립과 동시에 대안무역팀을 만들어 아시아의 저개발국으로부터 수공예품을 수입하기 시작했고, 2004년 두레생협이 일본의 대안무역단체 ATJ로부터 필리핀의 마스코바도 당을 수입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공정무역운동은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우선 양적인 차원에서, 2002년, “0”이던 것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쳐 2010년 현재 공정무역 인증 매출 및 공정무역 단체들의 매출 합계는 약 7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1] 활발하게 활동하는 공정무역 단체의 수도 늘었다. 두레생협연합회, 아름다운커피,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ICOOP 생협연합회, 페어트레이드코리아(그루), 한국 YMCA 피스커피, 기아대책 행복한 나눔, 한국공정무역연합 등 여러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공정무역단체 협의회도 결성되었다.

공정무역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설립 당시 아름다운가게는 공정무역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 3세계 지원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규정했으며[2], 두레생협은 일본의 생협운동에서 비롯된 “생산자 조직지원, 친환경 지향성”[3]에 기반하여 운동을 바라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정무역이 한국에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공정무역을 소외된 이웃에 대한 나눔 차원에서 보았다면, 이제는 경제시스템의 구조적인 불공정성, 대기업의 약탈적인 관행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일 등 비판적인 행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어나고 있다.

공정무역이 먼저 시작되고 발전되어온 서구의 공정무역운동을 바라보더라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나눔”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공정무역운동의 여러 가지 측면 중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서구의 공정무역운동을 살펴보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정무역 운동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자. 공정무역운동은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공정무역은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그만의 분명한 역할이 있으며, 이윤 극대화와 탐욕에 기반하지 않고, 연대와 호혜의 정신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구상해 나가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질 수 있다. 한국의 공정무역운동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자선을 넘어, 빈곤을 양산하는 시스템의 불공정성을 고발하고, 함께 잘 사는 공존의 새로운 사회를 여는 깃발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공정무역운동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공정무역이 1)국제개발협력으로 만들어내는 변화의 사례, 2)시스템의 불공정성을 고발하는 어드보커시 역할을 하는 사례와, 3) 새로운 사회적 경제를 구상하는 데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사례를 설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공정무역으로 할 수 있는 멋진 일들, 어떤 것들이 있는 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2.     공정무역운동의 역사

Tallontire (2000)[4] 는 공정무역운동의 역사를 크게 “나눔의 더 좋은 방법 Good Will Selling”으로 여겨지던 1940-1970년대, 사회운동으로서의 역할을 모색하던 “연대의 무역 Solidarity Trade”으로서 여겨지던 1970-80년대, 그리고 “서로 이익이 되는 사업으로서 정착 Mutually Beneficial Trade” 되는 1990년대 이후로 구분한다.

Tallontire가 지적한 것처럼, 초기의 공정무역의 역사는 전후의 궁핍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난민과 빈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사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이 “어려움”들에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기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들은 공정무역단체들이 (초기에는 대안무역단체 Alternative Trading Organizations로 불림)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찾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 부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들과 의식적으로 연대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두 번째 형태의 공정무역운동의 주축이 되었다.

1964년 UNCTAD Conference에서 원조보다는 무역에서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Trade, Not Aid”-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해 더 좋은 방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를 계기로 개발도상국에 불리하게 짜여 있는 국제 무역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5]

이를 계기로 70년대에 유럽에 조용하게 번지기 시작한 것인 “World Shop” (또는 Third World Shop) 운동이다. 1971년, 벨기에에서 옥스팜 베렐드빙켈스 OXFAM WERELDWINKELS가 설립된다. Wereldwinkels란 네덜란드어로 “World Shops”이라는 뜻이다. 옥스팜 베렐드빙켈스와 같은 조직이 벨기에의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설립되었는데, 이 단체의 이름 역시 프랑스어로 “Oxfam World Shops”의 의미를 갖는 “OXFAM MAGASINS-DU MONDE”이다.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었던 옥스팜 베렐드빙켈스와 옥스팜 마가쟁 두몽은 공정무역 사업을 하는 사업체로서 무역정의 문제에 집중한 비영리 단체인 Oxfam Solidarite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개발도상국에 불리한 구조로 되어있는 무역 시스템을 바꾸자는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옥스팜 베렐드빙켈스는 공정무역 제품 판매는 물론 공정무역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공정무역이 “모든 사람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6] 유럽의 공정무역단체들은 이처럼 시민들에 의해 조직된 “무역정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에서 이와 같은 유형으로 공정무역 운동에 접근한 대표적인 사례가 니카라과 커피를 창업아이템으로 삼은 Equal Exchange 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산디니스타 Sandinistas 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한 니카라과를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레이건 정권이 니카라과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리자, Equal Exchange는 니카라과 농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니카라과 산 커피를 네덜란드로 운송했다가 미국으로 사들여 오는 방식으로 무역사업을 시작한다. [7]

이 시점까지 공정무역을 일컫는 말은 “대안무역 Alternative Trade” 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이른바 “커피위기”가 전 세계 커피 농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대안무역을 이끌고 있던 활동가들 중 일부는 자원봉사와 기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구조적인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보고, 보다 전문적인 회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에 보다 전문적인 공정무역 회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중 대표적인 회사가 Cafédirect이다. 국제커피협정 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 의 붕괴 후 발생한 커피 시장의 장기 공황 속에서, 커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경제가 붕괴하고 농민들이 아사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옥스팜을 비롯한 국제개발 단체들은 커피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시정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8] 규모가 작은 자원봉사자/시민단체 중심의 공정무역 단체들이 취급할 수 있는 정도의 물량으로서는 “커피위기”를 맞고 있는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보다 커피사업에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로 커피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 것이 영국의 Oxfam Trading, Equal Exchange, Traidcraft, Twin Trading이 각자 자산을 내놓고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설립한 CaféDirect 이다. [9]

공정무역 활동가들은 커피위기를 계기로 농산물시장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커피를 비롯한 농민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시장의 변동성을 감당할 수 없는 농민들에게 세계화된 상품시장의 급변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배추파동이나 쌀 시장 개방이 농민들에게 어떤 어려움을 미치는가의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90년대 이후 공정무역의 또 다른 특성은 공정무역 인증제도의 도입과 메인스트림 진입이다.

1987년, 멕시코 이스트모 (Istmus) 지역에서 활동하던 노동사제인 Fr. Frans Van Der Hoff는 지역 농민들을 협동조합으로 규합함과 동시에 네덜란드의 Solidaridad 와 협력하여 공정무역 인증제도를 제안한다. Max Havelaar Initiative는 각 나라의 인증제도의 모델이 되어, 1997년에는 각 나라에서 각자 형성된 공정무역 인증기구들의 연합체인 Fairtrade International 이 설립된다.

공정무역 운동에 인증이라는 제도가 생긴 후 생겨난 새로운 현상은 대기업들에게 공정무역 인증기준에 따라 심사를 받고 인증을 받으라는 캠페인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Global Exchange의  Roast Starbucks Campaign[10]이다. 이 캠페인의 특이한 점은 기존의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과는 달리, “이렇게 행동한다면 공정무역으로 인정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무작정 “당신들은 나쁘다” 라는 불매운동보다는 기업입장에서는 보다 현실적이었다는 특성이 있었고, 작은 변화나마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실용적인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인증제도의 도입은 활동가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다. 공정무역운동을 초기부터 이끌었던 활동가들은 순수공정무역단체들이 하는 공정무역활동과 대기업들이 최소한의 공정무역기준만을 지키는 활동이 혼동되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인증제도의 도입, 그리고 그를 통한 대기업들의 공정무역 참여가 많은 농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갔음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정무역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노력과 공정무역의 확산을 통한 혜택의 확대를 중시하는 관점은 2011년에도 크게 부딪쳤다. 공정무역인증이 대기업들에게도 마케팅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자, 사업적인 차원에서 공정무역인증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공정무역 기준을 완화 시켜서 보다 손쉽게 공정무역 인증을 취득할 수 있게 하려는 시도를 한다. Fair Trade USA는 기존에 공정무역단체가 영세농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으로부터 구매한 커피만을 공정무역으로 인정하던 것을 대지주가 소유한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 커피를 위한 공정무역 인증기준을 만들었고, 이것이 Fair Trade USA 가 주장하는 “Fair Trade for All”[11] 선언의 핵심내용이다. 이 결정으로 인해 Fair Trade USA 는 전 세계 공정무역 인증기구들의 네트워크 조직인 Fairtrade International과 결별하게 된다.









3.     공정무역으로 할 수 있는 멋진 일들
그림1) 공정무역단체의 세 가지 사명






공정무역이 발전해 온 역사를 다시 한 번 요약해 보자면, 공정무역운동의 초기에는 활동가들의 관심사가 초기에는 “나눔”으로서의 빈곤퇴지 사업에 집중되었다가, 70년대를 지나면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불공정한 관계와 구조적인 불공정함을 시정하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여,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90년대 들어 공정무역은 한편으로는 대기업들에게 인증기준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운동과 함께 공정무역단체들 입장에서는 사업적인 전문성과 운동의 순수성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들이 모색되기 시작한다. 이번 장에서는 공정무역운동 안에서 1) 국제개발협력의 사례, 2) 어드보커시의 사례, 3) 대안적인 기업으로서의 사례를, 초콜릿산업에서의 공정무역 운동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1)        국제개발협력사업으로서의 공정무역: 쿠아파 코쿠의 사례[12]

쿠아파 코쿠는 1992년, 가나가 World Bank와 IMF가 강요한 구조조정과 민영화 계획의 일환으로 국영 카카오 수매기관인 Cocobod의 독점권을 폐지할 무렵,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을 돕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비록 국영 Cocobod가 낮은 가격이나 부정부패 등의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막상 Cocobod의 독점권을 폐지하고 민간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에게 수매와 수출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시장 자유화를 시작하자, 농민들의 처지는 시장자유화 이전보다 더 악화되게 되었다. 구조조정으로 만들어진 “자유시장”에 농민들의 자리는 없었다. 오히려, 영세 농민들은 비효율적이고 후진적인 존재들로,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1993년, 공정무역단체인 트윈은 가나의 농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들고 가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i.    농민들이 소유하는 회사법인을 만들어 카카오를 공동 판매 할 수 있도록 하자.
                   ii.    회사의 이익은 당연히 농민들에게 귀속된다.
                  iii.    카카오 판매로 발생한 수익을 이용, 발전기금을 적립하여 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SNV, TWIN 등의 공동 노력에 힘입어 민주적인 구조를 갖춘 협동조합으로 발전했고, 시장 자유화 이후 카카오 수매와 수출 라이선스를 취득한 단체 중 유일하게 농민이 주인인 단체이다. 조합원 200명으로 시작한 쿠아파 코쿠는 오늘날 5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거대 조직이 되었으며, 이웃 시에라리온에 협동조합 모델을 전파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모범적이고 영향력 있는 협동조합의 모델이 되었다.

2)        어드보커시로서의 공정무역: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Raise the Bar, Hershey!” 켐페인[13]
쿠아파 코쿠 사례는 카카오 재배 국가에서는 매우 드물게 좋은 사례로 꼽힌다. 아프리카의 카카오 산업에서 이렇게 좋은 사례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004년, 미국 국무부는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한 카카오 생산국가들에서 약 11만명의 아동들이 “가장 열악한 형태의 아동노동” 에 시달리고 있으며, 1만명 정도는 인신매매의 피해자로서 노예상태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음을 보고했다. 이런 문제는 일찍부터 그 심각성이 지적되어 왔으나, 아동노동 문제 개선을 위한 노력을 명시한 2001년 주요 초콜릿 회사들이 하킨-엥겔 의정서에 서명한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초콜릿 회사들의 미온적인 자세 때문에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한 주요 카카오 생산국들에 만연한 아동 인신매매, 아동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2010년 시작된 “Raise the Bar, Hershey!”은 공정무역 운동단체들과 시민운동단체들이 함께 참여한 캠페인이다. Green America, Global Exchange, International Labour Rights Forum이 공동발의단체로 캠페인을 주도하였으며, 이 세 단체 외에도 많은 공정무역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참석했다. 이 캠페인은 5만명이 넘는 소비자가 참여하여, 페이스북, 트위터, 이메일, 편지, 초콜릿 아동노동에 대한 다큐멘터리 상영회 등 다양한 형태의 캠페인으로 마지막까지 초콜릿 아동노동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허쉬에 대한 압력을 가하여, 마침내 2012년 10월 3일, 허쉬사는 보도자료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하여 2020년까지 자사 제품에 사용되는 코코아 원료 100%를 3자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내기에 이른다. [14]

3)        대안적인 기업모델로서의 공정무역의 사례들

공정무역단체들은 그 설립목적이 빈곤문제에 대응하는 대안적인 경제시스템의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었던 만큼, 단체의 지배구조나 운영방식에 있어서도 대안적인 기업의 형태를 보여줌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적 경제를 열어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공정무역단체들은 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운동적 성격 때문에, 기존의 제도적 질서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왔다. 공정무역단체들이 개발도상국의 농민들을 위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본래의 목적을 잘 실천하기 위해서 택하고 있는 지배구조의 형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부류로 공정무역단체들이 돕는 농민들이 기업의 지배구조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쿠아파 코쿠 농민 협동조합은 오늘날 디바인 초콜릿 회사의 주식 45%를 소유하는 대주주이며, 농민들의 대표가 이사회에서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15] 또 다른 공정무역 단체인 아그로 페어의 주식은 30%가 농민 지분이다.[16] 트윈은 농민 지분이 64%이다.[17] 공정무역 인증 기준을 결정하는 Fairtrade International 또한 중요 의사결정을 내릴 때 생산자 대표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부류로 공정무역 단체 자신이 협동조합이 되어 생산자 협동조합과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실천하는 부류이다. 미국의 Equal Exchange는 직원주주 협동조합이며, 이탈리아의 CTM Altromercato는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월드샵이 법인조합원으로 협동조합을 만든 사례이다. Oxfam Fair Trade (OFT) 역시 Oxfam Wereldwinkels(OWW)가 무역 기능을 독립시켜서 만든 협동조합 회사이다. Oxfam 월드숍들의 네트워크 조직이었던 Oxfam Wereldwinkels는 무역, 상품개발, 그리고 슈퍼마켓 등 전문적 비즈니스 조직과의 거래를 전담할 영리기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으나, 그 영리기업이 여전히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고 OWW의 정신을 유지하는 파트너가 되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공정무역 단체들은 자원봉사자들의 그룹이거나, 비영리 재단 등 전문적인 비즈니스 역량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에서 출발했으며, 이런 역량이 절실히 필요한 갈림길에 설 때 어떤 공정무역 단체들은 전문적인 비즈니스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회사 등 통상적인 영리회사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 반면, 다른 단체들은 영리기업이기는 하되 보다 공정무역의 정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형태로 협동조합을 택하였다.

Equal Exchange, CTM Altromercato, Oxfam Fair Trade 등 협동조합들은, “구성원들 내부의 자조와 연대”를 위한 일반적인 협동조합의 설립목적을 넘어서서, 개발도상국에 있는 농민들을 위해 현지의 변화를 위한 국제개발 사업과 구조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어드보커시 활동이라는 두 가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는 공정무역 사업이 협동조합의 모델로 가능함을 입증해 왔다.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경제는 최근에 대두되기 시작한 용어이지만, 공정무역의 사업방식은 추구하는 가치, 사업에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방식 등의 요소 등을 감안할 때, 그 용어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존재했던 사회적 경제의 한 모델로서, 사회적 경제의 발전 방향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4.    공정무역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공정무역의 역사와 공정무역운동의 여러 가지 측면을 살펴 보면서, 공정무역이 단순히 “제3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뛰어넘어 지속 가능한 국제개발협력의 모델로서, 특히 전 세계 농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이윤추구와 탐욕이 아닌 연대와 호혜를 동력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의 한 구성요소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한국에서 이런 공정무역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첫째, 우선 한국의 공정무역 단체들은 지지자와 소비자들에게 생산자 프로그램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현재 공정무역 단체들은 대부분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전문적인 경력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어서 순수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의 시행착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각 공정무역 단체들이 생산지 발전에 대한 전문성을 육성하는 데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각 단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단체들은, 가장 기본적인 사명인 “생산자 공동체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와 함께 감시와 비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공정무역 단체들은 서로간의 생산지 발전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여 시행착오를 최소화 하고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함께 공정무역을 하는 공정무역 단체들뿐 아니라, 공정무역의 취지에 공감할 수 있는 단체들과 공동의 목표를 찾아 연대활동의 시너지를 최대화 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뿐 아니라 개발협력, 경제정의, 무역정의, 인권, 여성, 환경, 종교적인 신앙/가르침의 실천, 다양한 가치를 가진 단체들이 각자의 지향이 공정무역과 만나는 점에 관심을 갖도록 공정무역 캠페인의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선의에만 의존하는 사업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 공정무역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선택하더라도 품질에 만족할 수 있도록 품질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공정무역이 성장하는 초기 단계에는 자원봉사와 기부, 후원, 보조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정무역 모델이 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공정무역단체의 상근활동가들은 판매, 구매, 홍보 등 각 영역에서 전문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또한 경영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표 1) 공정무역 연표[18]
1946 메노파 기독교의 긴급구호 단체인 MCC (Menonite Central Committee) 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던 Edna Ruth Byler가 Puerto Rico에서 저소득층 여성들이 만든 재봉 공예품을 수입하기 시작. 후에 유럽 이재민들이 만든 공예품으로 확장. 북미의 첫 공정무역 기구인 텐 사우전드 빌리지(Ten Thousand Villages)의 기초가 됨

1949 Church of Brethren 교회에서 북미의 두 번째 공정무역 기구인 SERRV(Sales Exchange for Refugee Rehabilitation and Vocation) 설립, 제2차 대전으로 피해를 받은 난민들로부터 나무시계를 수입

1960년대 영국 옥스팜 가게에서 중국 난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시작으로 공정무역 형태의 사업이 시작됨 1968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Trade not Aid(원조가 아닌 무역)”이 필요하다는 주장 제기. 공정무역이 저개발 국가의 발전정책의 일환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함

1969 네덜란드에서 옥스팜과 다른 유럽 인도주의 활동단체들이 공동으로 수공예품을 파는 첫 월드샵(World Shop)을 염. 무역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는 인식개선 활동 및 캠페인 활동을 수행

1972 텐 사우전드 빌리지가 북미 첫 공정무역 소매점을 염

1973 네덜란드의 “Fair Trade Original”이 최초의 공정무역 커피 수입 (과테말라의 협동조합)

1986 이퀄 익스체인지(Equal Exchange)가 북미의 첫 번째 공정무역 사원조합회사 설립. 니카라과로부터 고품질의 커피와 가정용품을 수입함으로써 레이건 정부의 소모사 독재정권 지원, 독재정권 전복 후 산디니스타 정권 탄압에 대한 반대 등, 정치적 견해를 분명히 함

1987 EFTA (European Fair Trade Association, 유럽공정무역연합)결성

1988 멕시코에서 빈민사목을 하던 네덜란드 출신 카톨릭 성직자 프란스 판 데어 호프와 네덜란드의 비영리 단체 “Solidaridad” (연대) 의 간사인 니코 로젠이 주축이 되어 최초의 공정무역 인증 시스템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 Initiative) 설립. 막스 하벨라르 및 및 뒤를 이은 각국의 공정무역 인증 시스템은 개별 제품의 유통구조를 추적하여 인증하는 제품별 인증 시스템이었음

1989 IFAT (International Federation of Alternative Organizations, 국제대안무역연합, 현 WFTO)이 첫 번째 전세계적 공정무역 네트워크로써 공정무역 선구단체들에 의해 설립됨.

1994 공정무역연맹(Fair Trade Federation) 설립: 북미 공정무역 단체들의 첫 네트워크

1997 FairTrade Labeling Organization(FLO, 페어트레이드인증기구) 설립
북미에서는 1998년 TransFair USA설립 

2004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의 국가 및 지역 단위의 공정무역 생산자 협회들이 결성됨.
COFTA (Cooperatives for Fair Trade Africa), NAP (Network of Asian Producers), 등

2007 전세계 판매액 25억 달러 달성.

2012 Fair Trade USA, Fairtrade International과 결별 (커피, 카카오에서 협동조합이 아닌 플랜테이션 생산품을 인정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





[1] ICOOP (2011), “ICOOP 생협 공정무역 5년의 성과와 과제”, ICOOP 협동조합연구소 22회 포럼 자료집
[2] 아름다운가게 내부 보고서
[3] 이정옥(2011), 사회과학논총 10집, 대구가톨릭대학교
[4] Tallontire, Ann (2000) Partnerships in Fair Trade: reflisctions from a case study of Cafedirect
[6] http://www.oxfamwereldwinkels.be/pageview.aspx?pv_mid=8356
[7] Bowes, John (2011) Fairtrade revolution
[8] Oxfam (2002) Mugged: Poverty in Your Coffee Cup
[9] Weinmann, Wolfgang (2010) 아름다운가게 국제공정무역 회의 발표
[11] http://fairtradeforall.com/vision/innovate-the-model/
[12] 쿠아파 코쿠의 사례는 주로 http://www.divinechocolate.com 에 있는 내용을 정리하였다.
[13] Raise the Bar, Hershey! 캠페인 사례는 주로 www.raisethebarhershey.org 에 있는 내용을 정리하였다.
[16] Bowes (2011)
[17] Huybrechts (2012) Fair Trade Social Organizations and Social Enterprise
[18] FTRN (2010), New Conscious Consumer http://www.fairtraderesource.org/learn-up/buy-ftrn-publications/ accessed on 2010/10/1 (번역: 아름다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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