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6일 일요일

공정무역의 선구자, 마이클 배럿 브라운을 기억하며 (2016.11.14)

 2015년에는 유난히 많은 거인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공정무역 운동에는 ‘시장 안에서 시장에 저항하라(In and against the market)’는 유명한 슬로건으로 알려진 마이클 배럿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있다.

2015년 5월 7일, 신좌파 운동에 투신한 사회주의자이자 경제학자이며 노동자 교육에 헌신한 교육자, 공정무역 운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마이클 배럿 브라운이 활동가로서의 삶을 마쳤다. 향년 97세 (1918-2015)
좌파 경제학자로서 New Left Review (1960) 창간, 버트란드 러셀이 주도한 Peace Foundation 설립 및 재단 기관지 Spokesman의 창간(1963), 노동자 자주관리 연구소 (Institute for workers’ control) 설립(1968) 및 사회주의 경제학자 컨퍼런스의 출범(1970) 등 영국 진보 운동의 주요 사건들에 주도적인 역할로 참여하며 작지 않은 발자국을 남겼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에드워드 톰슨과 같은 다른 신좌파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마이클은 구소련이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무력 진압하는 것을 보고 공산당을 탈당한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존 공산주의의 정치, 경제에 실망한 이들은 문화, 정치, 경제 영역에서 각각 ‘꾸준한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의 일환으로 기존의 노동과 계급문제에만 천착했던 기존의 좌파들과 달리 시민권 운동, 성소수자 권리, 젠더 문제 등 광범위한 사회정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이클은 ‘꾸준한 경제 혁명’의 일환으로서 노동자의 교육, 정치 세력화, 노동자 자주관리 제도를 신좌파의 중요 의제로 보았다.
그의 인생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노동자 교육이었다. 그는 30세이던 1948년부터 에섹스, 쉐필드 등지에서 광산 및 철강 노동자들을 가르쳤고 이들을 노조 활동가, 지방 및 중앙 정치인들로 육성했다. 사우스 요크셔의 웬트워스 캐슬이라는 지역에 노던 칼리지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을 맡았으며, 이 학교는 오늘날에도 연간 6천명이 수학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평생 교육기관으로 설립 취지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다.
1983년 은퇴 후, 노동당의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이 이끄는 런던 광역시 의회 (Greater London Council)의 지원으로 전 세계 커피 생산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네트워크 조직인 ‘제 3세계 정보 네트워크-약칭 트윈’ (Third World Information Network; TWIN- 후에 비영리 법인이 됨)을 설립하였으며, 이 조직을 기반으로 영국 공정무역 운동의 선구적 무역회사인 트윈 트레이딩 (TWIN Trading)를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 마이클이 트윈의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트윈(비영리단체)은 영리, 비영리 단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커피 무역 전문회사인 트윈 트레이딩에 이어 공정무역 초콜릿 전문 기업인 디바인, 커피 전문 기업 카페다이렉트를 설립하여 공정무역 운동의 확산의 기틀을 다졌다. 트윈 트레이딩은 비영리 단체 트윈의 회원인30개의 협동조합 네트워크와 거래를 하고 있으며, 이들 중 다수가 트윈 트레이딩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디바인의 최대주주도 생산자 협동조합인 쿠아파코쿠이다. 이처럼 생산자가 판매회사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노동자 소유 기업 개념의 국제적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신좌파 운동, 노동자 교육, 공정무역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는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없는 분야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 가지 활동 분야는 모두 경제학자로서 그가 주장한 현실 이해에 바탕을 둔 것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이클이 공산당을 떠나 신좌파 운동에 가담한 것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적 공산주의가 아닌 분권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경제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교육, 정치 세력화, 노동자 소유나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에 대한 신념 또한 경제 내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정무역은 이런 생각을 국제 경제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에서 강화되어 가는 대기업들의 경제권력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유력한 수단 역시 민주주의라고 보았다.
나는 그의 생각을 요즘 언어로 표현한다면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 민주화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김종인 대표의 영향으로 기업에 대한 독일식 공공 통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로버트 달의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듯 자원과 부의 집중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퇴보에 대항하여 경제 시스템 내에서 민주적인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한다는 보다 넓은 개념을 경제민주화로 보는 것이 보다 총체적인 이해가 아닐까 한다.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재벌 규제와 같은 국가 정책적인 차원의 실행, 노동자 소유 및 노동자 자주 운영, 기타 이해 당사자의 참여 등 기업 의 이해 당사자들이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 수준의 변화, 공급 사슬의 자원 집중 문제에 대한 대응 운동으로서 농업 협동조합이나 소비자 협동조합 등의 결성 등과 같은 활동들이 있을 수 있으며, 이런 움직임 모두를 경제 민주화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마이클이 노동자 교육에 헌신한 것은 노동자가 깨어나 조직화하여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경제 권력의 집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고, 공정무역에 헌신한 것은 조직화된 농민이 권력화된 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공급사슬의 경제 민주화가 개발도상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디바인 초콜릿의 소유권을 농민 협동조합이 가질 수 있도록 한 것도 그의 이런 신념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신좌파 운동 참여, 노동자 교육, 공정무역의 세 가지 사회활동 모두 경제학자로서 마이클 배럿 브라운이 보여준 앎과 실천의 일치라고 볼 수 있다.
처음 한국에 공정무역이 들어올 때, 공정무역 단체들조차도 흔히 ‘착한 소비’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착한 소비’는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공정무역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는 단어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다. 공정무역 소비자로서 공정무역의 구매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에 투표하는 행위이며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에서, 점점 커져가고 있는 불평등, 경제 권력의 집중은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근본부터 위협하고 있다. 소유와 권력의 집중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삶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미래에 투자할 것인가? 마이클 배럿 브라운의 학문과 삶에 대해 주목해 보는 것은 한국 내 공정무역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마이클 배럿 브라운의 업적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바이다.

2017년 2월 6일 월요일

캐나다 이야기 (2)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 허드슨 베이와 제도 경제학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는 허드슨 베이 컴퍼니’ Hudson Bay Company. 이 회사는 오늘날 캐나다 전역에 백화점 형태의 매장을 90개나 가지고 있는 대형 유통체인이다


회사 이름은 캐나다 동부 퀘벡, 온타리오, 마니토바, 누나붓의 4개 주로 둘러싸여 있는 허드슨 만에서 온 것이다. ‘허드슨 만이라는 해역 이름이 회사 이름에 쓰인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허드슨 베이 컴퍼니가 처음 설립된 것은 1670년의 일로, 설립당시의 정식 명칭은 ‘The Governor and Company of Adventurers of England trading into Hudson's Bay’이었다. 모두 풀어서 번역하자면 허드슨 만으로 향하는 영국 무역 개척자들의 회사 겸 관할 정부이다. 회사의 정식 명칭에서 정부Governor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극도로 단순화하면 이 회사가 개척한 식민지에서 영국 왕실의 대리인으로 현지 정부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설립 당시 이 회사는 동인도 회사와 같은 성격의 법인이었다.  동인도 회사의 정식 명칭과 비교해 보았다. 동인도 회사의 정식 법인 이름은 "Governor and Company of Merchants of London trading into the East Indies", 동인도 제도와의 교역을 위한 런던 상인들의 회사 및 관할 정부이다. 허드슨 베이와의 교역은 당시의 주 교역 항로를 차지했던 동인도 회사의 교역에 비하면 미미한 규모에 불과했지만,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과 달리,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지속적인 탈바꿈 끝에 오늘날까지 회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인도 회사들의 교역 상품은 차, 향신료, 염료, 설탕, 등 다양했으나, 회사 설립 당시 허드슨 베이 컴퍼니의 교역 상품은 주로 동물의 가죽, 특히 비버의 가죽이었다. 비버의 가죽은 영국 신사의 필수품이었던 탑 햇의 소재로 쓰였다. 비버 가죽을 구하기 어려워 진 이후에는 비단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1638년에는 찰스 1세가 탑 햇의 소재로 비버 가죽 이외의 다른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금했다고 하니 애용되는 것을 넘어 탑 햇의 표준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비버 가죽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고, 고급 소재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비버 가죽은 주로 러시아에서 수입했는데, 남획으로 인해 물량이 줄어 공급이 수요를 맞추지 못하게 되자 비버 가죽 가격은 폭등했고,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캐나다 지역에서 들어오는 비버 가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시장 상황으로 오늘날의 퀘벡 지역에 있던 이민자들의 정착 지역, 뉴프랑스에 있던 프랑스의 식민지 정부는 아메리칸 선주민들과의 독점 거래를 통해 큰 이익을 내고 있었다.

피에르-에스프리 라디슨 Pierre-Esprit Radisson(1636-1710)과 메다르 슈아르 시유에 드 그로제이예Médard Chouart, siuer des Groseilliers (1618-1710), 이 두 사람이 허드슨 베이 컴퍼니의 창업자들이다. 이들은 당시 캐나다의 미개척 지역으로 진출하면 더 많은 아메리칸 선주민들과의 거래선을 확보하여 더 많은 비버 가죽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당시 프랑스 식민 정부는 이들에게 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 무허가 교역을 하며 비버 가죽 무역의 사업성을 확신한 이들은 사업계획을 세웠는데, 핵심은 북극해와 연결되는 허드슨 해협을 통과하여 허드슨 만으로 연결되는 새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이 경로를 이용하면 프랑스 관할 지역을 통과함 없이 아메리칸 선주민들과 비버 가죽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찰스 2세 궁에서 사업 계획을 보고하여 사업 타당성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이들은 찰스 2세의 조카였던 루퍼트 왕자 Prince Rupert를 동업자로 끌어들여 찰스 2세로부터 왕실 공인 무역 회사 Chartered Trading Company로 인가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 회사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모국에 이익을 가져다 줄 교역을 개척하기 위해 자산을 투자하여 벤처 사업을 하는 데 따르는 갖가지 위험을 무릅쓰는 대가로 사업의 독점권은 물론, 개척한 지역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정부를 대리할 권리, 즉 군사, 사법, 징세, 화폐 발행, 조약 체결 권리를 왕이 발행한 칙서Charter로 위임 받았다. 칙서에서 이 회사 소유로 선포한 토지의 면적은 오늘날 캐나다 면적의 40%에 달하는 방대한 영역이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당시 찰스 2세는 다른 유럽의 기독교 왕국이 소유권을 선포하지 않았으므로토지 소유권 및 통치권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그 당시엔 상식적인 제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상당히 고색창연하고 구태의연한 역사속의 사실로만 보이지만,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어 보면 정부가 벤처 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를 제공한 것이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비버가죽 교역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는데, 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사업을 지원해 준 것이다. 

제도경제학자 다니 로드릭은 허드슨 베이와 같은 '제도'가 영국과 캐나다 사이의 거래를 활성화하는데 한 역할에 주목했다. 세계화globalization, 또는 국가간 경제 통합 international economic integration에 있어 이런 제도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한 사례로 제시했고, 아울러 이런 제도를 도입, 유지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 그리고 국가가 회사에 위임한 준 국가적인 권리 등 비 시장적인 요소들에 주목했다. 장하준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 제도, 관습 등 비시장적인 요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니 로드릭은 허드슨 베이의 사례를 통해 세계화, 즉 국가간 경제 통합을 확산 시키는 데 있어 제도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이는 달리 해석하면 시장의 유지 발전을 위해 자유 방임이 아닌, 니즈에 근거한 제도의 적극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계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IMF나 세계은행등이 저소득 국가들에 민영화, 시장 개방을 필수적인 정책으로 처방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경제발전이나 교역 활성화를 위해 산업 정책, 국가 개입, 제도 혁신 등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거래를 확대해 나가는 데 있어 허드슨 베이 컴퍼니가 그 당시 군사력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런 사실로 인해 거래 관계가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기반한, 불공정한 것이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동인도 회사의 피로 물든 역사가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달리, 허드슨 베이는 동인도회사와 같은 악명을 떨치지는 않았지만, 허드슨 베이의 사업 확장이 선주민들에 대한 폭력과 약탈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867년 캐나다 자치령이 선포된 지 3년 후,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30만 파운드에 토지 소유권 및 군사, 사법 등 준 정부 기능과 관련된 제반 권리를 캐나다 자치령에 넘기고 민영화된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민간 회사 법인으로 전환하여 기존의 사업을 통해 축적된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업을 지속해 나간다.
비버 가죽과 총, 브랜디 등을 거래하던 물물교환 기지는 점차 상점으로 변신했고, 인구가 증가하고 채금 등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주민들의 다양한 니즈에 대응하여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카누를 한 지점에서 빌려 다른 지점으로 반납하는 렌탈 서비스도 있었고, 의류, 가구, 목재, 식기, 주류, 담배 등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였으며, 위니펙 지점에서는 심지어 혼인증명서도 발급해 주었다고 한다.

허드슨 만 지역의 혹독한 기후, 선주민들과의 교역 개척, 다른 무역회사들과의 충돌, 영국-프랑스 전쟁 등 거친 역사를 거치며 놀라운 적응 능력으로 살아남은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오는 2020년 설립 350주년을 맞는다

(최초 작성: 2017.2.6 / 최근 업데이트: 2018. 7.25)


[참고문헌] 

http://www.hbcheritage.ca/hbcheritage/history/people/explorers/radisson http://www.cbc.ca/radio/undertheinfluence/world-s-oldest-brands-1.3524048 
 Rodrik, D. (2011). The globalization paradox: democracy and the future of the world economy. WW Norton & Company.



[사진 출처]

http://www.robinsonlibrary.com/america/canada/northwest/hudsonsbay.htm

Trading post (Unknown artist):  Historic image from the Hulton Archive 

http://www.gettyimages.com.au/detail/news-photo/colorized-engraving-shows-activity-at-a-hudsons-bay-company-news-photo/71630687#colorized-engraving-shows-activity-at-a-hudsons-bay-company-trading-picture-id71630687

http://www.collectionscanada.gc.ca/eppp-archive/100/200/301/ic/can_digital_collections/athabasca/html/hbco/

http://www.alamy.com/stock-photo/hudson's-bay-department-store.html



2016년 1월 10일 일요일

커피 시장의 주인은 누구인가?

커피 시장의 주인은 누구인가?
커피 한 잔에 담긴 불평등과 저항

커피가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물품이 아니었다니

여러분 전 세계에서 거래금액 기준으로 교역량이 가장 많은 상품이 뭔지 아시나요? , 짐작하시는 대로 석유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는 뭔지 아시나요?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커피입니다.’

이런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강연을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을 들은 적이 있다. 순 거짓말이다.  

커피 전문 칼럼니스트 마크 펜더그라스트의 “Uncommon Ground” 2010년 개정판이 2014년 한국에서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서문을 읽다 보면 커피가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물품이라는 통념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마크 펜더그라스트 또한, 너무나 당연한 듯이 회자되어 온 이야기여서, 사실 확인을 해 볼 생각을 해 보지 못하고 강연 마다 같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강연에서 경제학자인 한 청중이 의문을 제기하자 한 번도 확인해 본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확인 결과 정말 오랫동안 사람들이 진실인양 믿어왔던 이야기가 사실과 다름이 밝혀졌고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1] 정말로 UN의 전 세계 커머디티 교역 관련 통계 정보가 있는 UNCOMTRADE.ORG 에 접속해 보면 누구나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확인해 보니 커피는 구리, , 설탕보다 교역량이 작다. [2] 같은 농산물과 비교해 보더라도, , 설탕, 콩에 이어 4위에 지나지 않는다. [3] 과거에 교역량이 석유 다음이었던 적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언론에 보도되는 얘기도 하도 사실 확인 없이 유포되는 얘기가 많아 별로 놀라운 얘기는 아닌데, 저자는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책에 잘못된 정보가 활자화 되어 널리 배포된 것이 적지 않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잘못된 통설에도 배경과 기원은 있을 터. 사람들은 왜 애초에 커피에 대해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다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커피 생산자의 꿈과 절망

사실 커피는 개발도상국이 수출하는 물품 중에서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품목이다.[4]커피가 전 세계 교역량 2라는 잘못된 정보를 누가 유포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정보를 인용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수출 품목 중에서라는 전제를 누락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해 본다. , 설탕, 콩 등은 전세계 교역량을 따지면 커피보다 크지만, 선진국에서 생산하는 양이 적지 않은 반면, 커피는 열대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작물이며 상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춘 선진국이 거의 없기[5]에 개발도상국의 수출품 중에서는,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큰 것이 맞다.

개발도상국이 수출할 수 있는 품목 중 2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커피가 저소득 국가들에게 특히 중요한 상품이라는 뜻이다. 과거 커피가 식민지에서 커피 플랜테이션을 운영했던 식민 국가들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커피 생산국들은 커피 수출에서 생긴 부가가치를 잘 활용하면 경제발전에 필요한 기초자본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들이 독립하던 5-60년대부터 커피 협정의 붕괴로 커피 위기의 시발점이 된 1989년까지의 짧은 기간은, 커피 생산국가들이 여전히 이런 희망을 품고 있던 시기였다.

1989년 시장 안정을 위한 안전 장치 역할을 하던 국가간 협정이 폐지되고 1980년대 지속된 세계은행과 IMF가 강제한 구조조정 계획에 의해 커피 생산국의 관련 정책 기구들이 무력화되는 급격한 시장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커피 생산국을 위한 짧았던 풍요와 기회의 시간은 지나가고 시련의 시간이 닥쳐왔다. 베트남의 시장진입과 커피 쿼터의 폐지로 인한 공급 과잉사태가 가격 폭락으로 이어진 후 장기간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커피 시장에 국지적 공황이 찾아온 것이다.

커피 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2002년 발간된 옥스팜 보고서 “Mugged” 에서는 생산자들이 받는 커피 가격이 지속적으로 폭락하여 기대했던 수익은커녕 빚더미에 앉게 된 커피 농민들의 고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50년 이상 커피 농사를 지어온 농민은 이렇게 낮은 가격은 평생 처음이라며 하소연한다. 이 때 국제 커피 가격은 최근 100년간 최저가격으로 떨어졌다. 브룬디(79%), 이디오피아(54%), 우간다(43%)는 전체 수출에서 커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의 전체 경제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이 나라들이 받은 충격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이 경험한 대공황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남미의 커피 생산국들 또한 대부분 커피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커피 가격의 장기 불황이 경제 전체에 미친 파급효과는 한 나라 경제의 기반을 흔들 만큼 강력했다. 특히 커피는 이 나라들에서도 가장 가진 것 없는 고지대의 가난한 사람들, 원주민들이 생계를 의존하는 작물이었고, 변화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한 이들은 더 심한 타격을 받았다. 아프리카, 남미의 많은 커피 생산지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었고, 커피 농민들은 코카와 같은 마약의 원료를 재배하거나, 고향을 등지고 목숨을 건 이주를 떠났다. 커피 가격이 가장 낮았을 때에는 커피 농민이 받는 가격을 가정에서 마시는 즉석 커피 26.4$ 1kg 한 봉지에 들어간 우간다 로부스타 생두의 양으로 계산하면 0.14$, 0.5%에 불과했다. [6]

커피 산업 전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개입 노력과 더불어 중국 등 신규 시장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에 힘입어 국제 시장 가격은 회복되었고 10년 이상 농민들의 삶을 파탄에 빠뜨렸던 커피 시장의 장기 불황은 지나갔으나, 여전히 커피 시장은 구조적으로 변동성이 큰 시장이며, 여전히 커피 농민들은 커피 산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시장자유화 조치에 따라 각 생산국의 국영, 준국영 커피 관련 기구들이 폐지되고 난 빈 공간을 대형 커피 업체들이 재빠르게 장악했고, 이들은 인수, 합병을 통해 커피 시장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시장자유화 조치는 커피 위기를 야기 했을 뿐 아니라 커피 시장의 판도를 영원히 바꾸어 버린 것이다.

누가 커피 시장을 지배하는가?

오늘날 커피생태계에는 약 2,500만 명의 생산자가 있고 5억 명의 소비자가 있다. 5개 업체(네슬레, 크래프트-멘델레스, 사라 리 Sara Lee, 프록터앤드갬블 Procter & Gamble, 치보 Tchibo)가 전체 커피 로스팅의 45%를 장악하고 있고, 겨우 3개 업체(노이만 그룹 Neumann Gruppe , ECOM, 볼카페 Volcafé)가 생두 거래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7] 바로 이들이 오늘날 커피 생태계의 권력자들이다.

현재의 커피 시장은 권력과 자원의 집중이 점점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커피 시장의 과점 세력이 된 거대 로스팅 업체와 무역상사들은 커피 시장에 진입하는 관문을 장악한 문고리 권력이 되어 협상력이 약한 다수의 중소 농장과 생산자들을 한국의 대기업이 하청업체 관리하듯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막강한 영향력의 독점 대기업이 피라미드 형태의 네트워크 안에서 하위 구성원에 대해 직접 책임은 지지 않지만 거래상의 우위, 즉 갑을 관계를 이용,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불평등한 관계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글로벌 가치사슬 이론에서는 관계형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8]

이미 가진 구매자 권력을 행사하여 구매자 권력이 더 커지는 현상, 그로 인해 시장 지배적 대기업들에 시장 권력과 자원의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현상, 대기업과 투자회사들의 투기로 인한 변동성 확대, 생산자 보호 역할을 수행하던 각 생산국의 국가 기구를 시장 개입이라는 명목으로 해체된 후 농업 생산자들이 파편화되고 협상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 커피 산업에 닥친 이런 일련의 변화는 단지 농민들의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된 힘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하고 커피 농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소규모 생산자들을 조직화하고 독점적 구매 권력을 규제하여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시장의 균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다.

1952년 이미 캐네스 갤브레이스는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미국 내 농식품 기업의 성장과 권력 및 자원의 집중현상을 조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점을 규제하고 농민들을 조직화하여 권력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정무역이 소농들의 조직화를 강조하고, 생산자 조직의 모니터링에 공을 들이는 것 또한 근본적으로는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갤브레이스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것은 미국 농산업의 문제였으나, 시장 권력의 집중 현상이 전 지구적 현상이 된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 주장은 더욱 더 설득력을 가진다.

커피는 고지대나 험준한 산악지역에서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카카오, 설탕, 차 등 다른 열대 작물 대비 소규모 생산자 조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콜롬비아 전국 커피 협동조합 연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산자 조직들이 촘촘하게 조직되고 이들이 다시 광범위한 연대체를 구성할 경우, 생산과 품질이 안정되고 협상력이 높아져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커피 시장에 공정무역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칠레 도심의 빈민가에서 빈민 사목을 하다가 피노체트 정권 때 추방당한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신부이다. 멕시코로 옮겨 주로 원주민들이 농사를 짓는 테후안테펙 마을에서 노동사제로서 농사를 지어 번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목을 하던 프란스 신부는 원주민 마을 사람들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여 공정무역 거래를 시작했다. 1981년 처음 원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 조직을 위한 워크샵을 시작한 이래, 성난 중간상들에게 테러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시리 UCIRI 협동조합은 네덜란드의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공정무역 인증을 만들고, 인증제를 바탕으로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거래를 개시하고, 수매량을 늘리고, 수출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등 필요한 일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합류했다. 조합원 수가 많아지자 협상력이 커졌을 뿐 아니라 품질 관리, 농사 기술 공유, 상호 부조 등 조합의 장점이 발휘되어 점차 다른 언어를 쓰는 부족 공동체들도 조합에 가입하는 등 점차 지역 전체의 커피 농민들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UCIRI가 협동조합으로서 정착하기까지, 37명의 회원이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망했으며, 사람들은 기존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중간상인들과 연관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9] 생산자들의 조직화에 대해 조합 파괴 행위 등의 불공정 거래 행위로 생산자들의 조직화에 대응하는 사례들은 남미 지역에서 흔하게 보고되고 있다.[10]

생산자들이 조직화 해서 작은 대장중간상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조직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끝판 대장들이 장악하고 있는 커피 시장은 생산자 조직에게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커피 및 유통 대기업들이 납품업체들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은 생산자 조직의 회원들을 보호해 가면서 만족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며, 대기업들을 우회해서는 선진국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정무역이 필요한 것이다. 생산자들의 조직화만으로는 시장 진입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광범위한 소비자들의 조직화를 통해 생산자 조직의 물품에 시장을 제공하고 구매자로서 대기업에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기업 및 커피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외부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공정무역 인증 막스 하벨라르도 사라 리와 같은 커피 대기업의 압력으로 출시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비영리 단체인 솔리다리다드와 이에 호응한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공정무역 기업/단체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해당 단체가 거래하는 품목을 많이 판매하여 지속 가능한 이익을 내며 생산자들과의 공정한 거래를 이어가는 것이지만, 공정무역 단체가 지향하는 이상이 보다 공정한,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을 꿈꾸는 것이라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화뿐만 아니라 경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 변화에도 활동의 우선 순위를 두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의 작은 일부분으로 자선단체 규모의 소중하지만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며 살아 남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공정무역 단체들의 현실이지만, 공정무역의 비전은 사람들의 살림살이, 즉 경제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공정무역을 가난한 사람을 돕는 착한 커피와 같은 알기 쉽고 거부감 없는 이미지로만 포장하던 관행에서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를 비롯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품을 둘러싼 경제 권력의 문제점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불의와 불평등에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가난한 자도 약자도 함께 살 수 있는 살림살이, 공생의 경제로의 전환을 이상으로 삼고 현상 진단에 바탕을 둔 구체적이고 뚜렷한 정책목표를 가진 캠페인 및 정책 옹호 활동의 결합이 필요하다.

작년 이맘때 발간된 국제 공정무역 어드보커시 사무국의 누가 시장을 지배하는가? Who’s got the power?” 는 공정무역 캠페인 활동이 나갈 방향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생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집에서는 불평등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고 있는 불평등의 심화, 그에 얽힌 불공정 행위들에 대한 이론적 배경 검토에서부터 시작하여 EU 및 각 나라와 여러 주체들에게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그 동안 간과되었던 구매 독점(monopsony)에 대한 규제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판매자 독점이 소비자의 권익을 해친다는 인식에서 판매자 독점의 규제를 위한 법 체계는 각 나라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슈퍼마켓과 같은 새로운 구매 독점(monopsony)의 경우 소비자 구매가격의 인하, 즉 소비자에게 이로운 측면이 있다는 생각에 독점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슈퍼마켓과 같은 구매 권력의 독과점이 생산자 측, 즉 농민, 노동자측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게 되면 결국에는 소비자 복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11] 

따라서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는 판매자 권력뿐 아니라 월마트, 테스코와 같은 슈퍼마켓들의 구매자 권력의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하고, 규모가 커진 이들 슈퍼마켓에는 특히 구매 원가의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이들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공급사슬에서 불공정 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들 대기업들을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완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공정무역 단체들은 그 동안 생산자의 조직화를 위한 현지 활동이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에만 집중해 왔다. 국제기구나 정부 정책을 향한 목소리는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공정무역 사무국의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Who’s got the power?’ 자료집은 공정무역, 불공정 행위에 관심이 있는 한국의 시민 단체들에게 활동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서라 할 수 있다. 시장의 불공정성과 지속 불가능성에 대한 경제학적 관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장 권력 집중 현상의 역사적 배경과 흐름, 커피, 설탕, 코코아, 면화 등 열대 작물 시장의 불공정 거래 행위들의 양상,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 정부의 노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관심 있는 단체와 독자에게 적극 권하는 바이다.

자료집 영어 원문은 다음 인터넷 주소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1] 마크 펜더그라스트 저, 정미나 역, (2013)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을유문화사, 서울, 2판 서문
[2] 2012년 수출 기준으로 집계한 전세계 연간 교역량은 석유 15,623$, 구리 519$, 487$, 설탕 445$, 커피 392$, http://comtrade.un.org/pb/CommodityPagesNew.aspx?y=2012
[3] Pendegrast (2009) Coffee second only to oil? Is coffee really the second largest commodity? Mark Pendergrast investigates and finds some startling results, Tea and Coffee Trade Journal, April, 2009
[4] Talbot (2004) Grounds for Agreement: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Coffee Commodity Chain, 윗글에서 재인용
[5] 선진국에서 생산하는 커피는 하와이 코나 커피가 거의 유일하다.
[8] 같은 문서, p23
[9] Jan Van der Kaaij (2002) Building a sustainable, profitable business: Fair Trade Coffee, IMD International Teaching Case
[10] FTAO(2014) 앞 문서, p36, 농민 인터뷰에서 (무기명)
[11] 같은 문서. FTAO (2014) 의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

2013년 1월 9일 수요일

[독서노트]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홍기빈 (2013년 1월)

프락시스와 포이에시스, 목적 그 자체인 가치와 수단적 가치

경제를 일컫는 말인 "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가정의 살림살이"를 뜻하는 OIKONOMIA 라고 합니다. 살림살이를 위한 획득의 기술을 CHREMATISTIKE 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획득의 기술은 살림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위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현대 경제학의 근본 전제 중 하나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그를 충족시킬 자원은 희소하다" 라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되는 것은 "행복한 삶" 이고 재물은 그것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제한되므로,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있다(유한하다)고 주장합니다.

삶에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들을 프락시스, 다른 무언가를 위한 행위를 포이에시스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가 분리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한 기술에 현혹될 때, 즉 획득의 기술과 살림살이의 관계가 역전될 때, 프락시스가 포이에시스로 타락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 행복한 삶" 이라는 궁극의 목적이 "돈을 벌려고 기를 쓰는 삶"에 희생되는 현상에 중심에 놓인 중요한 이유로서 "불안"을 제시합니다.

돈벌이에 몰두하는 성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에는 생존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본디 유한한 것이 정상인데, 생존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생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 무한해 진다는 것입니다.

케인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역동성을 제한하는 요소로서 유동성선호[1]라는 병적인 심리를 들었고, 유동성 선호의 기저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것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불안을 바라보는 시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장경제에 대한 해석을 곱씹어보면,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위한 경제시스템을 만드는 길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경제주체들의 "불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홍기빈 선생님은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시장만능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조명합니다.

시장만능주의 경제와 협동경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불안"을 대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시장만능주의 경제가 "불안"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라면, 협동경제는 사람들 간의 관계망을 통해 사람의 살림살이에서 "불안"을 최소화하고 "좋은 삶"에 필요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합니다.



[1] 케인즈는 공황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사람들이 재산을 실물이 아닌 쉽게 다른 자산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성이 큰) 화폐로 보유하고자 하는 성향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성향을 유동성 선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