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9일 수요일

[독서노트]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홍기빈 (2013년 1월)

프락시스와 포이에시스, 목적 그 자체인 가치와 수단적 가치

경제를 일컫는 말인 "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가정의 살림살이"를 뜻하는 OIKONOMIA 라고 합니다. 살림살이를 위한 획득의 기술을 CHREMATISTIKE 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획득의 기술은 살림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위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현대 경제학의 근본 전제 중 하나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그를 충족시킬 자원은 희소하다" 라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이 되는 것은 "행복한 삶" 이고 재물은 그것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제한되므로,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있다(유한하다)고 주장합니다.

삶에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들을 프락시스, 다른 무언가를 위한 행위를 포이에시스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가 분리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한 기술에 현혹될 때, 즉 획득의 기술과 살림살이의 관계가 역전될 때, 프락시스가 포이에시스로 타락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 행복한 삶" 이라는 궁극의 목적이 "돈을 벌려고 기를 쓰는 삶"에 희생되는 현상에 중심에 놓인 중요한 이유로서 "불안"을 제시합니다.

돈벌이에 몰두하는 성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에는 생존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본디 유한한 것이 정상인데, 생존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생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 무한해 진다는 것입니다.

케인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역동성을 제한하는 요소로서 유동성선호[1]라는 병적인 심리를 들었고, 유동성 선호의 기저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것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불안을 바라보는 시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장경제에 대한 해석을 곱씹어보면,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위한 경제시스템을 만드는 길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경제주체들의 "불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홍기빈 선생님은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시장만능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조명합니다.

시장만능주의 경제와 협동경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불안"을 대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시장만능주의 경제가 "불안"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라면, 협동경제는 사람들 간의 관계망을 통해 사람의 살림살이에서 "불안"을 최소화하고 "좋은 삶"에 필요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합니다.



[1] 케인즈는 공황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사람들이 재산을 실물이 아닌 쉽게 다른 자산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성이 큰) 화폐로 보유하고자 하는 성향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이 성향을 유동성 선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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