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6일 월요일

캐나다 이야기 (2)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 허드슨 베이와 제도 경제학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는 허드슨 베이 컴퍼니’ Hudson Bay Company. 이 회사는 오늘날 캐나다 전역에 백화점 형태의 매장을 90개나 가지고 있는 대형 유통체인이다


회사 이름은 캐나다 동부 퀘벡, 온타리오, 마니토바, 누나붓의 4개 주로 둘러싸여 있는 허드슨 만에서 온 것이다. ‘허드슨 만이라는 해역 이름이 회사 이름에 쓰인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허드슨 베이 컴퍼니가 처음 설립된 것은 1670년의 일로, 설립당시의 정식 명칭은 ‘The Governor and Company of Adventurers of England trading into Hudson's Bay’이었다. 모두 풀어서 번역하자면 허드슨 만으로 향하는 영국 무역 개척자들의 회사 겸 관할 정부이다. 회사의 정식 명칭에서 정부Governor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극도로 단순화하면 이 회사가 개척한 식민지에서 영국 왕실의 대리인으로 현지 정부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설립 당시 이 회사는 동인도 회사와 같은 성격의 법인이었다.  동인도 회사의 정식 명칭과 비교해 보았다. 동인도 회사의 정식 법인 이름은 "Governor and Company of Merchants of London trading into the East Indies", 동인도 제도와의 교역을 위한 런던 상인들의 회사 및 관할 정부이다. 허드슨 베이와의 교역은 당시의 주 교역 항로를 차지했던 동인도 회사의 교역에 비하면 미미한 규모에 불과했지만,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과 달리,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지속적인 탈바꿈 끝에 오늘날까지 회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인도 회사들의 교역 상품은 차, 향신료, 염료, 설탕, 등 다양했으나, 회사 설립 당시 허드슨 베이 컴퍼니의 교역 상품은 주로 동물의 가죽, 특히 비버의 가죽이었다. 비버의 가죽은 영국 신사의 필수품이었던 탑 햇의 소재로 쓰였다. 비버 가죽을 구하기 어려워 진 이후에는 비단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1638년에는 찰스 1세가 탑 햇의 소재로 비버 가죽 이외의 다른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금했다고 하니 애용되는 것을 넘어 탑 햇의 표준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비버 가죽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고, 고급 소재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비버 가죽은 주로 러시아에서 수입했는데, 남획으로 인해 물량이 줄어 공급이 수요를 맞추지 못하게 되자 비버 가죽 가격은 폭등했고,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캐나다 지역에서 들어오는 비버 가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시장 상황으로 오늘날의 퀘벡 지역에 있던 이민자들의 정착 지역, 뉴프랑스에 있던 프랑스의 식민지 정부는 아메리칸 선주민들과의 독점 거래를 통해 큰 이익을 내고 있었다.

피에르-에스프리 라디슨 Pierre-Esprit Radisson(1636-1710)과 메다르 슈아르 시유에 드 그로제이예Médard Chouart, siuer des Groseilliers (1618-1710), 이 두 사람이 허드슨 베이 컴퍼니의 창업자들이다. 이들은 당시 캐나다의 미개척 지역으로 진출하면 더 많은 아메리칸 선주민들과의 거래선을 확보하여 더 많은 비버 가죽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당시 프랑스 식민 정부는 이들에게 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 무허가 교역을 하며 비버 가죽 무역의 사업성을 확신한 이들은 사업계획을 세웠는데, 핵심은 북극해와 연결되는 허드슨 해협을 통과하여 허드슨 만으로 연결되는 새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이 경로를 이용하면 프랑스 관할 지역을 통과함 없이 아메리칸 선주민들과 비버 가죽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찰스 2세 궁에서 사업 계획을 보고하여 사업 타당성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이들은 찰스 2세의 조카였던 루퍼트 왕자 Prince Rupert를 동업자로 끌어들여 찰스 2세로부터 왕실 공인 무역 회사 Chartered Trading Company로 인가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그랬던 것처럼, 이 회사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모국에 이익을 가져다 줄 교역을 개척하기 위해 자산을 투자하여 벤처 사업을 하는 데 따르는 갖가지 위험을 무릅쓰는 대가로 사업의 독점권은 물론, 개척한 지역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정부를 대리할 권리, 즉 군사, 사법, 징세, 화폐 발행, 조약 체결 권리를 왕이 발행한 칙서Charter로 위임 받았다. 칙서에서 이 회사 소유로 선포한 토지의 면적은 오늘날 캐나다 면적의 40%에 달하는 방대한 영역이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당시 찰스 2세는 다른 유럽의 기독교 왕국이 소유권을 선포하지 않았으므로토지 소유권 및 통치권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그 당시엔 상식적인 제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상당히 고색창연하고 구태의연한 역사속의 사실로만 보이지만,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어 보면 정부가 벤처 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를 제공한 것이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비버가죽 교역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는데, 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사업을 지원해 준 것이다. 

제도경제학자 다니 로드릭은 허드슨 베이와 같은 '제도'가 영국과 캐나다 사이의 거래를 활성화하는데 한 역할에 주목했다. 세계화globalization, 또는 국가간 경제 통합 international economic integration에 있어 이런 제도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한 사례로 제시했고, 아울러 이런 제도를 도입, 유지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 그리고 국가가 회사에 위임한 준 국가적인 권리 등 비 시장적인 요소들에 주목했다. 장하준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 제도, 관습 등 비시장적인 요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니 로드릭은 허드슨 베이의 사례를 통해 세계화, 즉 국가간 경제 통합을 확산 시키는 데 있어 제도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이는 달리 해석하면 시장의 유지 발전을 위해 자유 방임이 아닌, 니즈에 근거한 제도의 적극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근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세계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IMF나 세계은행등이 저소득 국가들에 민영화, 시장 개방을 필수적인 정책으로 처방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경제발전이나 교역 활성화를 위해 산업 정책, 국가 개입, 제도 혁신 등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거래를 확대해 나가는 데 있어 허드슨 베이 컴퍼니가 그 당시 군사력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런 사실로 인해 거래 관계가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기반한, 불공정한 것이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동인도 회사의 피로 물든 역사가 널리 알려진 바와는 달리, 허드슨 베이는 동인도회사와 같은 악명을 떨치지는 않았지만, 허드슨 베이의 사업 확장이 선주민들에 대한 폭력과 약탈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867년 캐나다 자치령이 선포된 지 3년 후,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30만 파운드에 토지 소유권 및 군사, 사법 등 준 정부 기능과 관련된 제반 권리를 캐나다 자치령에 넘기고 민영화된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민간 회사 법인으로 전환하여 기존의 사업을 통해 축적된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업을 지속해 나간다.
비버 가죽과 총, 브랜디 등을 거래하던 물물교환 기지는 점차 상점으로 변신했고, 인구가 증가하고 채금 등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주민들의 다양한 니즈에 대응하여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카누를 한 지점에서 빌려 다른 지점으로 반납하는 렌탈 서비스도 있었고, 의류, 가구, 목재, 식기, 주류, 담배 등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였으며, 위니펙 지점에서는 심지어 혼인증명서도 발급해 주었다고 한다.

허드슨 만 지역의 혹독한 기후, 선주민들과의 교역 개척, 다른 무역회사들과의 충돌, 영국-프랑스 전쟁 등 거친 역사를 거치며 놀라운 적응 능력으로 살아남은 허드슨 베이 컴퍼니는 오는 2020년 설립 350주년을 맞는다

(최초 작성: 2017.2.6 / 최근 업데이트: 2018. 7.25)


[참고문헌] 

http://www.hbcheritage.ca/hbcheritage/history/people/explorers/radisson http://www.cbc.ca/radio/undertheinfluence/world-s-oldest-brands-1.3524048 
 Rodrik, D. (2011). The globalization paradox: democracy and the future of the world economy. WW Norton & Company.



[사진 출처]

http://www.robinsonlibrary.com/america/canada/northwest/hudsonsbay.htm

Trading post (Unknown artist):  Historic image from the Hulton Archive 

http://www.gettyimages.com.au/detail/news-photo/colorized-engraving-shows-activity-at-a-hudsons-bay-company-news-photo/71630687#colorized-engraving-shows-activity-at-a-hudsons-bay-company-trading-picture-id71630687

http://www.collectionscanada.gc.ca/eppp-archive/100/200/301/ic/can_digital_collections/athabasca/html/hbco/

http://www.alamy.com/stock-photo/hudson's-bay-department-stor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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